필자는 지난 글에서 현대사상의 구조 및 한계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다. (바로가기 링크)
그리고 얼마 후, '박사' 조주빈의 신상공개와 함께
텔레그램을 비롯한 익명 메신저 앱을 근거지로 한,
디지털 성 착취 범죄가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보도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 역시 수없이 분노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조주빈이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는 사상의 배경엔 무엇이 있었을까?
혹시, 필자가 주장했던 '현대사상의 구조적 한계'를
조주빈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러한 가정에 근거하여 기존의 생각을 더욱 구체화해보았다.
지난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빌리면,
그의 잔인함이 발휘되는 근거는 '돈' 때문이라고 한다.
단기간에 그 정도의 범죄 수익을 낼 수가 있다는 걸 터득했다면,
애당초에 성도착증 환자여서가 아니라,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런 인생을 살기로 작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실존주의-개인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 순서로 쌓여진 현대사상의 구조가
'개체화된 인간의 쾌락을 증대'하는 관점에서 구축되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로 인해, 쾌락의 '목적과 수단', '원인과 결과'가 부도덕한 관점에서 결정된다는 의미였다.
필자는 조주빈이 자신의 범행을 어떻게 합리화 하는지를 실존주의 시각에서 살펴 보았다.
총 세 가지 측면(주체성, 개체성, 책임)에서 해석을 해보았다.
먼저, 주체성의 측면에서 보면,
조주빈은 '정보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피해자와 가담자의 '신상 정보'는 조주빈이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성착취 피해자는 운영자 및 가담자로부터 '노예' 취급을 당했다.
조주빈은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그는 파렴치한 돈의 노예였지만,
적어도 자신 스스로는 권력의 주체라는 '착각'과 '도취' 안에 살았다.
실존의 주관적인 느낌과 내면적인 근거가
어떠한 외부 조건에도 구속받지 않도록 절대화된 것이다.
개체성의 측면에서 보면,
조주빈은 '대한민국의 법률'을 일종의 도그마(dogma)라고 여기고,
이에 대해 저항하며 자신의 실존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유를 마음대로 못하게 하느냐.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게! 돈이 있으면 더 즐거울 수 있게!'
라는 게 그가 텔레그램에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가 욕망하는 '개인의 자유'가 침해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개인의 자유'였다는 사실은 전부 무시되고 있었다.
만약, 현대사상이 '개체화된 인간의 쾌락적 자유'보다
'보편적 인간이 겪는 고통의 평등'에 주목했다면,
그가 감히 이런 뻔뻔하고 괘씸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책임의 측면에서 보면,
조주빈은 피해자(성착취를 당한 여성)의 책임을 강조한다.
모든 책임은 쉽게 돈을 벌려다가 약점잡힌 '창녀'에게 있다는 것이다.
3월 25일,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포토라인에 선 그는
손석희 사장, 윤장현 시장, 김웅 기자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으나,
성착취 피해를 당한 여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조주빈이 그들을 결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여성들이 당한 성착취 피해는 모두 자업자득의 결과이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범죄는 오직 남성에게 한 사기, 공갈, 협박 뿐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텔레그램에서 자신의 박사방을 이렇게 소개한다.
"시대의 탈선. 나는 박사방을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조주빈은 디지털 성 착취 범죄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탈선에 있다고 떠넘기고 있다.
이처럼, 조주빈은 실존주의의 주체성, 개체성, 책임 측면에 있어
전부 자기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고 있다.
이러한 합리화가 가능한 배경은 그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보다,
'자신의 쾌락적 자유'를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타인의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위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죄책감' 대신 '이익'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타인의 고통'보다 '개인의 쾌락'을 우선시해도 되는 풍조였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강조'만으로는 '실존주의의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보편적 상식과, 민주적 제도와의 적극적인 결합이 요구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대책에 앞서 반드시 전제해야 할 조건은 이것이다.
'보편적 인간의 고통을 감소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보편적 인간의 고통을 증가하는 데 역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조주빈은 법의 심판 아래 죗값을 받을 것이다.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법과 제도는 곧 보완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상의 구조가 보여주고 있는 허술한 빈틈이 메워지지 않는 한,
제2의 조주빈, 제3의 조주빈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보고 싶다.
'개체화된 인간의 쾌락적 자유'에 주목할 것인가,
'보편적 인간이 겪는 고통의 평등'에 주목할 것인가?
- 참고자료
[단독]조주빈 "박사방은 '시대의 탈선'...돈 있으면 더 즐겁게"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32417522278598
성착취방 지배하는 ‘박사’…“현실의 찌질함 잊는 상상속 권력”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18498.html#csidx11cc326e986c997953b2e8f0e8476bf
“소라넷 계보 잇겠다”…올초 어느 블로거의 ‘n번방’ 선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8637.html#csidx2edb39f77be053dadb1b5444024d8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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