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회에서 ‘사회 안전법’이 통과되었다.
앞으로 남성들의 야간 통행은 금지된다.
오래 전에 통과된 법인 ‘국회 여성할당비율 개정법’에 따라,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누구도 오늘 ‘사회 안전법’이 통과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남성들이 이에 대해 집회를 열어 반대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남성이 거리에서 3인 이상 모이는 것은 폭력적 시위로 변질되거나,
여성의 안전을 심히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사회 안전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길거리엔 ‘사회 안전법’ 통과 소식을 보도 중인 거대 전광판 아래로
숏컷을 한 여성들이 저마다 성큼성큼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그 위로, 눈부신 햇살이 고요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 『그녀들이 꿈꾸는 세상』 ───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수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경제 양극화는 국내 경기를 완전히 침체 시켰으며,
이에 따라,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자,
사회 구성원 간에는 극심한 대립과 불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기 부양에 쓰일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하여 성판매 여성들의 경제적 지원 및 사회 복귀를 촉진했고,
국회는 그녀들의 자활을 위해 성판매 비범죄화 법안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음성적인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았으며,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 성판매 여성들의 보수는 이전보다 배로 늘어났다.
늘어난 돈은 로비자금으로 세탁되어 다시 정치계로 흘러 들어갔으며,
특정 여성들을 위한 각종 입법이 마련되는 초석이 되었다.
그 시기, '모든 여성은 하나'라는 슬로건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여성우월주의 정당에서는 이른바 ‘여성혐오 방지법’을 내놓았는데,
이 법안은 당시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사회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으며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관련 부처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폄훼한다고 해석되는
각종 예술작품에 대해서 철저한 검열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영화 · 드라마 · 소설 · 음악 · 미술 등
예술의 분야 및 장르를 막론한 모든 작품이 검열 대상이 되었다.
한편, 심의 부처의 주요 인사는 여성우월주의 정당과 관련된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남성혐오적 사상을 반영한 일종의 '문화예술 제작지침'을 만들어
방송국·외주 제작사·출판사 등에 하달했다.
새롭게 개정된 방송통신 심의규정에 따라서
주로 권장되는 작품의 주제는 ‘여성 간 동성애’였으며,
그 후로부터 이성 간의 결혼은 각종 작품 속에서
이기적이거나 구시대적인 선택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대중 매체에는 더 이상 긴 머리의 여성이 나오지 않았으며,
여성우월주의 문화는 사회 속에 매우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여성혐오 방지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곧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통과된 ‘문화 개혁법’에 따라,
여성 혐오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기성종교 및 전통문화 역시 퇴폐문화로 분류되었다.
정부가 종교 행위를 야만적이고 퇴폐적인 행위로 간주하여 단속함에 따라,
종교의 흔적은 서서히 지워져 갔고,
전통문화 및 유물은 문화 개혁을 선도하는
여성우월주의 단체에 의해 근절되거나 훼손되었다.
이렇듯 사회가 점차 퇴보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할 만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종적을 감춘 상태였으며,
이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부 지식인 남성들이 한명 두명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을 가로막은 건 곧이어 통과된 ‘정보통신보안법’이었다.
법안의 배경은 이른바 남성들의 ‘몰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국민 남성의 휴대기기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법이었다.
이에 따라, 현 사회에 불만이 있는 남성들은
여성 정보원의 공작에 따라 손쉽게 몰카범이 되었고,
조작된 증거와 함께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구금 및 고문을 당했다.
이들은 사실상 사상범 취급을 받으면서,
국가체제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강제적 자백을 받은 뒤에야 재판으로 회부되었으며,
개정된 국가 보안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받았다.
치안 부문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그 다음 개혁의 타겟이 된 것은 경제 부문이었다.
여성들의 거대 로비자금을 통해 공고하게 결탁한 정계·재계·언론계는
기업 내 성차별을 근절하자는 여론을 형성하여 ‘성평등고용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라 사무 관리직은 여성만,
육체 노동직은 남성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고용 구조가 바뀌었고,
남성의 노동시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두어
재계의 환영을 이끌어냈다.
법안의 통과를 극심하게 반대하는 일부 남성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 되었고,
나머지 남성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점점 현실 정치에 관심을 끊고 있었다.
이렇듯 남성들이 차별과 탄압을 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느 문헌에서도 이에 대한 합당한 명분이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사상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생물학 분야의 연구지원 예산액을 늘렸으며,
수많은 전문 인력들을 생물학 연구 과제를 위해 투입시켰다.
그리고 그런 정부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용 및 근로에 있어서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사무 관리직에 적합하며,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육체 노동직에 적합하다는 근거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사회 곳곳에 수많은 변혁을 이끌어냈다.
검찰·경찰·군대의 지휘권은 더욱 적합한 여성에게로 이양되었고,
남자 아이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잠재적 범죄자로 성장할 우려가 크므로,
남자 아이를 임신한 여성에게는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게 되었다.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우월한 여성에게는 양질의 교육 기회가 제공되었으나,
열등한 남성에게는 최소한의 교육만 제공하는 것으로 제한을 두었다.
건국의 역사도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남성중심의 역사를 일종의 식민지적 상태로 간주했으며,
여성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을 건국의 새로운 시기로 정립하였다.
정치계는 이러한 이념의 변화를 담아서 새롭게 헌법을 개정하였다.
사회가 이처럼 급진적으로 변화됨과 동시에,
남성들의 인구는 점점 감소하기 시작했고,
남성의 수가 줄어들자 인구재생산의 기능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은 동성간의 결혼이 이미 보편화된 뒤였다.
사회는 개인에게 동성애를 권장했지만,
사회 고위층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접대부와의 성적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또한, 남성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인해 부족해진 육체노동 일자리는
정계·재계·법조계·언론계 등 사회 고위층과의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비주류의 여성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남성들의 기득권이 없어지면 평등한 세상이 올 줄 알았지만,
여성들이 사회 각계의 기득권을 잡게 된 현재도,
여전히 하위층 여성의 계층 상승은 매우 요연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 사회의 문제점을 꾸짖는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경제적 하위층에 속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이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자신들은 어떻게 잉태되었으며,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그녀들은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사회 고위층만이 누리는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한 명, 두 명 모여서 점차 그 세력을 늘려갔다.
그렇게 그녀들은 세상을 전복할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오늘, 국회에서 ‘사회 안전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남성들의 야간통행이 금지된 밤의 거리 한 가운데에서,
긴 머리를 찰랑이는 수많은 여성들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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