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 중독'의 질병 분류여부를 이번달 말 총회에서 결정한다고 한다.
이 소식으로 인해 국내에선 성별·세대별 여론조사도 실시하고,
지상파 방송에서는 100분간의 토론도 열렸다.
이 문제는 현 정부 부처 내에서도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
먼저, 보건복지부는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다면
적극적으로 질병코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전세계 151조원 규모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
수출 효자산업인 게임에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국산게임 수출액 연 6.6조)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수면권을 이유로 셧다운제를 적극 옹호하며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내비친 바 있지만,
해당 문제에 관해서는 주무부처가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이기 때문에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나오는 목소리 중에는
게임중독을 '묻지마 범죄'의 원흉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중독은 정말 질병일까? 아니면 편견일까?
본 글의 첫머리에 잠깐 언급한 여론조사 결과를 다시 살펴봐도
엄마세대(중장년층 여성)와 아들세대(청소년층 남성)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엄마세대의 눈에 게임은 심각한 '중독'이며,
아들세대의 눈에 게임은 단순한 '놀이'일 뿐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게임중독'이 '마약' 혹은 '도박중독'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게임중독'을 마땅히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보지만,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측에선 국내 연구결과는 '중독'을 전제한 편향된 연구가 다수이며,
해외 논문 1500편을 살펴보면 '게임중독'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릴까?
*
아니, 우리는 질문을 바꿔보자.
만약, 게임 중독이 질병화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
여기서 잠깐
지난 5월 3일자 한국경제 신문기사를 인용해 본다.
… (전략)
발제에 나선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과거 5년 동안 연구된 게임 중독 논란에 관련된 논문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게임 중독 관련 영어 논문을 발표한 국가는 한국(91편)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인구당 논문 편 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으며, 정신의학 관련 논문의 비중이 특히 높았다.
윤 교수는 "한국이 '게임 중독' 논문 발표 국가 1위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논문을 쓴 대부분은 정신의학 전공의였는데, 이는 연구비 지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 연구의 주요 지원기관은 주로 한국과 중국의 정부기관이었다. 한국의 경우 한국연구재단(35편), 한국 보건복지부(23편), 미래창조과학부(17편) 순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자연과학펀드를 총괄하는 조직인 NSFC가 50편의 논문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윤태진 교수는 "한국,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연구자들은 게임중독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했다"며 "진단 도구나 척도도 타당하지 않고, 그 결과 중독의 유병률 결과도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게임 중독의 학술적 근거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며 "유일하게 합의된 내용은 '게임 장애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게임 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면 학부모들은 더 이상 가정교육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의사들도 복잡한 연구 없이 그냥 게임중독이라고 진단할 수 있어서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게임 중독'은 최소 수년 간은 비보험 치료가 되기에 병원이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후략)
정신 의학계에서 세계적인 진단기준으로 인정받는 서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서 편찬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이고
두 번째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는
'인터넷 게임장애'가 질병으로서의 근거가 부족해 정식 질환으로 등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8년 3월 9일 매일경제 신문기사를 인용하여 설명을 덧붙여 본다.
… (전략)
“(인터넷 게임장애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정한 진단기준이 없었고 내성이나 금단 증상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해 (DSM에)
정식 질환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 (중략) …
한덕현 교수에 따르면 질환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진단기준에 너무 많은 이들이 적용되면 안 된다.
가령 100명 중 33명이 진단기준상 질환이라면 이는 병이 아닌 트렌드라는 것이다.
보통 질환은 기준상 5%에서 10% 정도가 발생해야 병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고 이를 따지는 것이 진단역치다.
그러나 인터넷게임에 대한 몰두나 금단증상, 내성 등의 기준은 병으로 역치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
… (후략)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의 개정작업(DSM-III, DSM-IIIR, DSM-IV)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 박사는 그의 저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질병장사에 눈먼 제약업계 때문에 걷잡을 수 없게 된 과잉진단 현상에 대해 폭로하며,
현대 정신의학계의 문제점을 내부 고발한 바 있다.
일상의 근심과 고난마저 정신병으로 둔갑하도록 그릇된 유행을 일으키는 시대,
범람하는 정신장애 진단으로 인해 향정신성 의약품 판매 및 약물 의존도를 심각하게 상승시킨 시대로부터
현대인을 구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질병'이 문제가 아니라 '과잉 진단'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
이제 우리는 아까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자.
게임 중독은 질병일까?
게임 중독이 질병화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바람에 이제 건강한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올더스 헉슬리
- 참고자료
"한국, 게임중독 논문 발표 1위…연구비 지원과 관계"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1905031284v
전문가들 "게임 질병화 반대"..."더 많은 논의 필요해"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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