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세력에게 봉준호 감독은 꽤나 불편한 인물이다.
그가 젊은 시절 민노당에 몸담은 적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언짢게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들이 영화 '기생충'에 대해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정리하고,
이에 대해 하나씩 반박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영화 '기생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Q1. 이 영화는 좌파적 계급투쟁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Q2. 이 영화는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Q3. 이 영화는 부자를 타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자가 되어 군림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견해는 나도 모른다.
다만, 이제부터는 영화를 본 나의 감상에 따라 위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A1. 첫번째 질문에 먼저 답을 해보자. 이 영화는 정말 계급투쟁을 종용하는가?
계급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만,
이 영화엔 세가지 층위(지상,반지하,지하)의 가족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4명의 사망자가 나오는데,
4명 중 2명(문광,근세)은 지하 계층이고, 1명(기정)은 반지하 계층이다.
따라서, 4명 중 3명(75%)은 가난한 이들끼리 서로를 죽인 것이다.
이들의 죽음은 당연히 계급 투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지막 사망자 1명은 박사장이다.
박사장은 지상 계층에서 유일하게 살해된 인물이다.
그럼, 기택이 박사장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박사장이 부자라서?
기택이 박사장을 죽이고 그 집에서 부자처럼 살고 싶어서?
아니다.
박사장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어겼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코를 쥐어 막고 혐오하는 모습은 최소한 보이지 말았어야 했으니까,
매우 우발적이고 무계획적인 살인이 일어난 것이다.
만약 누군가의 주장대로 기생충이 정말 계급 투쟁을 종용하는 영화였다면,
감독이 영화의 결말을 결코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된 투쟁의 인고 끝에 달콤한 권력을 쟁취하는 스토리였다면 모를까,
어느 누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처참한 삶을 살기 위해 계급 투쟁을 일으키겠는가?
A2.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이 중요하다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전혀 엉뚱하게 본 거다.
영화에서 '기생충'이란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박사장의 집 지하에 숨어서 더부살이하는 근세와,
박사장으로부터 받는 급여로 살아가는 기택의 가족을 떠올리면서
영화 제목 '기생충'의 의미를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바로 박사장네 가족이다.
박사장이 경영하는 회사명은 'Another Brick'.
직역하자면 '또 하나의 벽돌'이다.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아줌마 따위야 널렸으니까,
벽돌을 갈아 끼우듯 다른 벽돌로 대체하면 그만이지,라는
평소 그의 신념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당장 그녀가 없으면 갈비찜 잘하는 음식점을 찾아 다녀야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사장의 옷에서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고,
고작 일주일 안에 집안 꼴은 엉망이 될 것이다.
사실, 벽돌 따위라고 생각했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박사장은 이제껏 많은 신세를 지고 있었으며,
그런 무수한 벽돌들이 촘촘히 쌓아 올려진 집 안에서 살아가듯,
실은 박사장이 주변 인물들에게 기생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나?
절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각자의 역할에 맞게 자리를 지키는 그 벽돌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도 부모의 배경도 아닌,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A3. 이 영화는 부자를 타도할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어 군림하라고 얘기하고 있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엉뚱한 얘기를 할 수 없다.
극 중 기우의 내레이션은 결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계획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암시를 주기 때문에 관객은 처연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기우는 편지의 답장 조차 전달하지 못할 만큼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는 아버지 기택의 소재를 알면서도 구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렵게 기택을 구출한다고 한들, 그를 보호할 힘도 없기 때문이다.
기우가 먼 훗날 부자가 되서 그 집을 사게 되면 아버지는 계단을 통해서 올라오라고 하지만,
이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기우는 이룰 수 없는 꿈을 희망으로 삼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이는 로또처럼 희박한 확률을 꿈꾸며 살아가는 서민의 무기력한 모습과 꼭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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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기뻤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로 뻗어나갈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비난'은 쉽지만 '비판'은 어려운 법,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모두가 찬양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긴 작품을 함부로 폄하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을 축하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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