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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괴물'을 만드는가?

by CADRIT 2021. 4. 20.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 부흥청에서 제작한

삼중수소(트리튬) 캐릭터 동영상이 다소 충격을 주었다.

아래는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한 자료이다.

부흥청 주장의 요지는 결국 걱정없이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며,

이에 대한 근거로는 해양 방출 시 농도를 큰 폭으로 희석시켜서

수돗물과 같은 수준이 된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이러한 일본 부흥청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왜인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거 분명 내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인데?'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어느 영화 속 장면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아래 시나리오는 해당 영화의 프롤로그 장면이다.

 


# 프롤로그

 

달그락대는 쇳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화면 서서히 밝아지면 ...
금속성 물건들이 가득한 차가운 색조의 영안실, 그 위로 자막이 떠오른다.

자막 : 2000년 2월 9일 - 주한 8 군 용산기지내 영안실

 

화면 좌측에는 큰 키의 미국인 부소장 맥팔랜드가,
반대쪽 맨 우측 끝에는 작은 체구의 한국인 군무원 김씨가 보인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말없이 의료도구를 정리하는 두 사람 ...
맥팔랜드, 싱크대 윗 면을 슥 -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맥팔랜드 : ( 손가락으로 끝의 먼지를 보며 ) 난 세상에서 먼지가 젤 싫어요
        김    씨 : ......
        맥팔랜드 : 먼지만 보면 짜증나.
        김    씨 : 청소 다시 하겠습니다.
        맥팔랜드 : 청소는 나중에 하고 ... 이거부터 좀 버렸으면 좋겠는데.

발 아래쪽에서 커다란 박스를 꺼내는 맥팔랜드, 박스안에는 유리병들로 가득하다.

        김    씨 : 이거는 ... ( 당황 ) 포르말리인데 ...
        맥팔랜드 : 정확히 ‘포름알데히드’ 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먼지낀 포름알데히드’
                   잘 봐요. 병마다 먼지가 잔뜩 ...
        김    씨 : ...
        맥팔랜드 : 짜증나. 죄다 싱크대에 갖다 부어버려.
        김    씨 : 예?
        맥팔랜드 : 전부 폐기처분 하라구요.
        김    씨 : 아니 저 그게 아니라 ... 이건 독국물이라서 규정상 ...
        맥팔랜드 : ( 말을 끊으며 ) 그냥 하수구에 부으면 돼요.
        김    씨 : 하수구에 버리면 한강으루 흘러들어갑니다.
        맥팔랜드 : 그래요. 한강에다 버리자구.
        김    씨 : 이건 암을 유발하구, 임신 장애두 일으키는 독극물 ...
        맥팔랜드 : ( 말 끊고 ) 한강 크잖아. 태평양에 오줌 한 번 눴다구 바닷물이 노래지나?
        김    씨 : ......
        맥팔랜드 : 명령대로 해요.

맥팔랜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김 씨 ... 영안실에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
( 장면 바뀌면 ) 홀로 남은 김씨, 포름알데히드를 한 병 한 병 수채구멍에 따라붓고 있다.
독극물에서 올라오는 독성가스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김씨, 방독면이 걸려있는 벽 쪽으로 간다.  
김씨를 따라 카메라도 트래킹하면, 테이블 위에 줄지어 늘어서있는 유리병들 ...
거의 400 여병의 포름알데히드 병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늘어서 있다.

방독면을 뒤집어 쓰고, 다시 작업을 계속하는 김씨.
유리병의 독극물을 계속 쏟아부으며, 다른 손으로는 싱크대를 문질러본다.
손가락 끝에 먼지가 묻어나는지 유심히 들어다보는 김씨 ...
독극물은 평범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끊임없이 하수구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후략)


2006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프롤로그 장면이다.

시나리오 버젼은 2005년 1월 4일자 1.5 버전을 참조하였으므로,

실제 완성된 영화의 대사와는 일부 차이가 있다.

 

영화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질라'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졌듯,

'괴물'은 맥팔랜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 사건은 당시 포름알데히드를 버리는 과정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된 군무원이

두통과 메스꺼움 등을 호소하며 3주간 병가를 내면서 부각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있음에도 미 제 34사령부는 포름알데히드는 

‘물로 희석하면 인체에 무해하며, 한강에 버리는 것은 결국 물에 희석됨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이후 군무원의 용기있는 제보로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

맥팔랜드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내세워 한국에서 재판을 받기를 거부하다가,

사건 폭로 5년 만인 2005년에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는

백주대낮에 한강을 날뛰는 '괴생명체'가 등장했지만,

영화의 제목이 일컫는 '괴물'이

단순히 '괴생명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2000년, 미군의 포름알데히드 무단 방류 사건과

2021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필자의 눈에 이 두 사건이 겹쳐져 보이는 건 우연일까?

 

무엇이 진정 '괴물'을 만드는가?

'무책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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